스웨덴보그의 저서에서

 

백마론에 덧붙이는 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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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마론에 덧붙이는 글 1

1) 말 진리의 이해를 의미하는 것이며 반대의 의미로는 오류의 확인에 있어서 이해의 결과처럼 여겨지는 논거를 의미한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이상하게 여겨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말씀 중에서 말이 언급된 구절을 모아 아래에 소개하기로 하겠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니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까?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하박국 3:8, 15)

여호와의 말들의 발굽은 암석과 같고(이사야 5:28)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에 들었나이다.(시편 76:7)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반의 세력을 멸할 것이오.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으러뜨리니 말과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려지이다.(학개 2:22)

내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오.(스가랴 9:10)

2) 이들 구절에서 “말”은 교회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병거는 진리를 이해하여 그로부터 도출된 교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병거와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은 말씀에 바탕을 둔 이해와 교리를 지닌 자들을 의미한다. 이런 점은 다음의 구절에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너희는 모여오라 내가 베푼 잔치로, 내 상에서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일지니라. 그리하여 내 영광을 열국 중에 나타내리라.(에스겔 39:17, 20, 21)

너희는 하나님의 큰 만찬에 모여오라. 너희는 말의 고기와 그 탄 자들의 고기를 먹으리라.(요한계시록 19:17, 18)

이 말씀은 주님에 의해 세워질 새 교회와 말씀의 이해가 열리게 될 것이며 그로부터 사람들이 진리로 이루어진 교리를 가르침받게 될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 뜻이 아니라면 말과 병거가 있는 주님의 상에 모여들어 말과 말을 탄 자의 고기를 먹는다는 우스꽝스러운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다음의 구절을 보아도 말과 병거가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진리의 말씀을 타고 달리소서(시편 45:4, 5)

너희는 노래하라. 구름 위를 달리는 이를 칭송하라.(시편 68:5)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를 칭송하라.(시편 68:33, 34)

하나님께서 지품천사(智品天使)를 타고 달리시더라(시편 18:11)

내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리라.(이사야 58:14, 신명기 32:13)

에브라임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게 하리라.(호세아 10:11)

위의 여러 구절에서 “타다(to ride)”라는 말은 교리에 속하는 진리 안에서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받아 현명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땅의 높은 곳은 더욱 탁월한 교회의 진리를 의미하고 에브라임은 말씀의 이해를 의미한다. 스갸라서에 나오는 “말”과 “병거”도 비슷한 의미를 나타낸다.

네 병거가 놋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네 마리의 말이 각각 끌고 있더라.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아롱지고 건장한 말들이 매였는지라. 이들을 일러 “영”이라 하더라.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였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스가랴서 6:1-8, 15)

요한계시록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어린 양이 책의 인(印)을 떼니 차례로 말들이 나오는데 첫째는 흰 말이오, 두번째는 붉은 말이오, 세번째는 검은 말이오, 네번째는 여윈 말이더라(요한계시록 6:1-8)

양이 인을 뗀 “책”은 말씀을 의미하고 이 말씀을 근본으로 삼아 계속해서 말씀을 이해해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을 뗀 책으로부터 나오는 말(horse)은 또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3) 반대의 의미를 갖는 똑 같은 표현에서 말은 진리의 이해를 병거는 교리의 이해를 의미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 마리의 말은 추론에 의해 오류를 갖게 되는 경우의 진리의 이해를 의미한다. 그리고 병거는 그런 식으로 도출된 교리나 이론(異論)을 의미한다. 다음의 구절을 보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있을진저 말 위에 머물러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도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다.(이사야 31:1, 3)

반드시 내 하나님 내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왕으로 내세울 것이라.왕이 된 자도 말을 많이 얻으려고 말 것이며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지니라(신명기 17:14-16)

이 구절들은 육체적인 의미에서 추론을 일삼는 “애굽”인들은 자연인이므로 말씀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언급된 것이다. 애굽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는 말씀과 그 왕은 말을 많이 얻으려 말지니라는 말씀은 종교의 오류 이외의 어떤 다른 의미를 나타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않을 것이니 (호세아 14:3)

어떤 이는 병거에 의지하고 어떤 이는 말에 의지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영광스러울진저(시편 20:7-8)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시편 33: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요, 그러나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타고 도망할 거시오, 빠른 짐승을 타고 달릴 것이니(이사야 30:15, 16)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을 영광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말탄 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워 하게 하리라.(스가랴 10:3-5)

내가 바벨의 왕 티르에게 말과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게 하리니, 말이 많으므로 그 티끌이 너를 가리울 것이며 네 성곽이 기병과 병거의 소리에 진동할 것이며 그가 그 발굽으로 네 모든 거리를 밟을 것이다.(에스겔 26:7-11)

말씀 속에서 티르는 선과 진리에 속한 지식과 관련된 교회를 의미하며 “바벨의 왕”은 그들의 그릇됨과 외경스러움을 의미한다. 그런 까닭에 “그가 말과 병거와 기병을 데리고 오며 말이 많으므로 그 티끌이 그것을 덮는다”라는 언급이 있게 된 것이다.

화 있을진저 피의 도시여, 그 속에는 울부짓는 말과 나뒹구는 병거로 가득 차 있도다.(나훔 3:1-4)

“피의 도시”는 말씀의 진리를 왜곡한 교리를 의미한다. 이 외에도 이사야 5:26, 28; 예레미아6:23; 8:16; 46:4, 9; 50:37-38, 43; 에스겔서17:15; 23:6, 20; 하박국 1:6, 8-10; 시편 66:11, 12; 147:10과 같은 구절에서도 말과 관련된 말씀을 볼 수 있다. 왜곡되어 파괴된 말씀에 속하는 진리의 이해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붉고, 검고, 야윈 말들로 상징되어 있다.(6:4, 5, 8) 진리의 이해가 “말”로 상징되고 또 반대의 의미로는 왜곡된 이해를 의미하므로 영적 의미에서의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점은 이로부터 드러나는 듯하다.

4) 이집트에는 사원을 비롯한 여러 건물의 기둥이나 벽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확인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형문자는 다름아닌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과의 상응이었다.이집트인들은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이 학문에 더 전념하였다. 먼 고대의 희랍인들은 이 학문에 따라 우화를 지어내었는데 이들 우화만이 가장 오래 된 저술 양식이었다. 나는 여기에 영계의 영과 천사가 보는 모든 것들은 상응일 뿐이라는 새로운 지식을 추가코자 한다. 이런 까닭에 전체 성경은 상응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응은 교회의 사람과 천국의 천사들을 결합시켜 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인민들이 이러한 상응을 이스라엘의 후손들도 빠져들기 쉬운 우상 숭배로 전환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들 문자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십계명의 제 1조에도 분명하게 나와 있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며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가 너의 하나님인 까닭이니라.(신명기 5:8, 9)

이 외의 다른 많은 구절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그 시기로부터 상응이라는 학문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런 학문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주님께서 계시록에서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말로 의미하고 계신 말씀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 하시므로 이러한 지식을 밝혀내어 그 핵심에 또는 영적 의미에 담겨있는 말씀을 여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작업이었다. 나는 런던에서 발행된 “천국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저술과 암스테르담에서 발행된 “계시록”이라는 저술에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고대인들은 상응이라는 지식을 지식 중의 지식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지혜를 구성하는 밑바탕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러한 지식에 전념하고 있는 학술기관에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말씀을 근거로 논증되고 또 계시록에 밝혀진 상응을 바탕으로 수행될 수 있다. 세상이 원한다면 나는 상응에 다름 아니었던 상형문자의 의미를 대중에게 전달할 의향이 있다.이 일은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임마누엘 스베덴보리

각주:

1. 편집가가 남기는 글: 스웨덴보리가 남긴 이 짤막한 저술은 그가 쓴 편지의 초안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가 직접 출판하지는 않았다. 이 글은 1758년도에 스웨덴보리가 출판했던 “백마론”에 부록이다. 백마론을 읽기 위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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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보그의 저서에서

 

백마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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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마론

요한계시록에서는 영적 또는 내적 의미에 대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정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의 눈은 불꽃같고,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더라, 그는 또 피에 젖은 옷을 입었더라. 그의 이름을 일러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의 뒤를 따르더라. 그의 옷과 다리에 적힌 이름이 있으니, 만왕(萬王)의 왕이요 만주(萬主)의 주라 하더라 (요한계시록19:11-14, 16)

위의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하나 하나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이들 표현의 내적 의미를 이해하는 이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하나 하나의 표현이 모두 표징적이고 의미심장함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하늘이 열렸다”, “백마가 그 곳에 있었더라”, ”정의로 심판하여 싸우더라”, “그의 눈은 불꽃같고”,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더라”., ”그는 또 피에 젖은 옷을 입었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가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그들은 희고 깨끗한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었더라”, ” 그의 옷과 다리에 적힌 이름이 있으니”라는 표현이 모두 그러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서술이 ”말씀”이요, 말씀이 곧 주(Lord)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일러 하나님의 말씀이라”라고 언급되어 있고 뒤이어 “그의 옷과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오,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의 표현을 해석해 보면 이 곳에 언급된 말씀이 모두 영적이고 내밀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늘이 열렸다”라는 표현은, 말씀의 내밀한 의미는 천국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있는 자라도 천국이 열린 자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표징하고 의미한다. 하얀 백마는 말씀의 내밀한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을 표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 점이 백마가 표징하는 것이라는 점은 곧 밝혀질 것이다. ”백마를 탄 자”라는 표현은 말씀과 관련된 주요, 그러므로 주는 말씀 그 자체임이 분명하다 .”그의 이름을 일러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라는 언급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선(善)을 근본으로 삼을 때에는”신실하고 정의로 심판하는”이로 호칭되며, 진리를 근본으로 할 때에는”정의로 심판하여 싸우는” 이로 호칭된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불꽃같고”라는 표현은 주님의 신성한; (Divine)사랑에 속하는 신성한 선(善)을 근본으로 하는 신성한 진실을 의미한다. ”그의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라는 표현은 믿음에 속하는 모든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자신 밖에 아는 자가 아무도 없고”라는 표현은 내밀한 의미에서의 말씀의 본질은 주님과 주님이 그 의미를 드러내어주신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에 젖은 옷을 입었더라”라는 표현은 /불경스러움과 곡해가 개재된 문자로 된 말씀을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군대가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는 표현은 말씀의 내면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희고 깨끗한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라는 표현은 선을 근본으로 하는 진리 속에 존재하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의 옷과 다리에 이름 적힌 것이 있으니” 라는 표현은 진리와 선, 그리고 그런 것들의 본질을 의미한다. 이같은 세부적인 사항과 19장의 전, 후에 보이는 세부적인 사항을 근거로, 우리는 교회의 마지막 시대에 말씀의 영적 또는 내적인 의미가 열릴 것이며 그 시대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러한 세부적인 사항에 이미 예견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시편17-21). 이것이 언급된 말씀의 의미라는 것을 여기에서 새삼 증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점은 “천국의 비밀”에 상세히 설명되어있고 또 주님이 신적 진리인 까닭에 주님이 말씀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비밀 2533, 2803, 2884, 5272, 7835)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의 신성한 진리이다. (천국의 비밀 4692, 5075, 9987)

주님은 정의이신 까닭에 ”그는 백마를 타고 정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라고 언급되어 있으며 ,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권세를 인류를 위해 비축해 두셨기 때문에 ”정의”로 호칭된다. (천국의 비밀 1813, 2025-2027, 9715, 9809, 10019, 10152).

그러므로 “정의”는 오로지 주님에게만 속하는 미덕이다 (천국의 비밀 9715, 9979).

“그의 눈은 불꽃같고”라는 표현이 신성한 하나님의 사랑에 속하는 신성한 선을 근본으로 삼는 신성한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은 “눈”은 믿음에 속하는 진리와 이해를 의미하며 (천국의 비밀 2701, 4403-4421, 4523, 4534, 9023, 9051, 10519), ”불꽃”은 사랑에 속하는 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934, 4906, 5215, 6314, 6832)

”그의 머리 위의 많은 면류관”은 믿음에 속하는 모든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천국의 비밀 114, 3858, 6335, 6640, 9863, 9865, 9868, 9873, 9905)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더라”라는 표현이 내적 의미에서의 말씀의 의미의 본질은 주님 자신과 주님께서 말씀의 내적 의미를 드러내어 주신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름”이 어떤 것의 본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144, 145, 1754, 1896, 2009, 2724, 3006, 3237, 3421, 4674, 9310)

”피에 젖은 옷을 입었더라”라는 표현이 곡해가 개재된 문자로 된 말씀을 의미한다는 것은 ”옷”이란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선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1073, 2576, 5428, 5319, 5954, 9212, 9216, 9952, 10536)

특히 궁극에 있어서의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로 된 말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5428, 6918, 9158, 9212버). 그리고 “피”란 불경스러움이 개재된 그릇된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군대가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라는 표현이 말씀의 내면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군대”란 천국과 교회의 진리와 선 속에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3448, 7326, 7988, 8019).

”말”은 이해를 의미한다. (천국의 비밀 3217, 5321, 6125, 6400, 6531, 6534, 7024, 8146, 8318)

그리고 “흰 색”은 천국의 빛 가운데에 있는 진리를, 그러므로 내면의 (interior) 진리를 의미한다 (천국의 비밀 3301, 3993, 4007, 5319).

“희고 깨끗한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라는 표현이 선을 근본으로 하는 진리 속에서 살아가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깨끗한 아마포” 또는”아마포”는 선을 근본으로 하는 진리인 천적인 기원(celestial origin)을 근본으로 하는 진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5319, 9469)

“옷과 다리에 이름 적힌 것이 있으니”라는 표현이 진리와 선, 그리고 그 본질을 의미한다는 것은 ”옷”은 진리를, ”이름”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질을, 그리고 “다리”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 3021, 4277, 4280, 9961, 10485).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신적 진리와 신적 선과 관련된 주이며 주는 신적 진리를 근본으로 삼는 ”왕”으로 호칭된다. (천국의 비밀 3009, 5068, 6148)

그러므로 그는 신적 선을 근본으로 삼는”주”로 호칭된다 (천국의 비밀 4973, 9169, 9174)

이러한 사실에서 영적 또는 내적 의미에서의 말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며 또 말씀 속에는 어떤 영적인 것, 말하자면 천국과 교회에 대한 그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는 표현은 하나도 없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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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보그의 저서에서

 

Arcana Coelestia #9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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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1. 'From the loins even to the thighs they shall be' means the range of those things, that is to say, of those composing that more external level of conjugial love, meant by 'the linen undergarments'. This is clear from the meaning of 'the loins' and 'the thighs' as those things which constitute conjugial love, 'the loins' those that belong to the more internal levels of conjugial love, 'the thighs' those that belong to the more external levels, so that the range of that love from internal to external levels is meant. The reason why the more internal levels of that love are meant by 'the loins' is that these are above; and the reason why the more external levels are meant by 'the thighs' is that these are below. For parts of a person that are above mean things which are more internal, and parts that are below mean those which are more external; this is why in the Word more internal things are meant by higher ones, and more external by lower ones, see 3084, 4599, 5146, 8325. The higher parts of a person correspond to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which are the more internal ones, and the lower parts correspond to natural things, which are the more external. This is why natural things are meant by 'the feet', 2162, 3147, 3986, 4382, 4938-4952. And since the lower part of the loins which leads down towards the feet is understood by 'the thighs' the more external or lower levels of conjugial love are meant by them, see 4277, 4280.

[2] The loins in general however mean conjugial love, 3021, 3294, 4575, 5050-5062; they have this meaning by virtue of their correspondence. Regarding the correspondence with heaven of everything present with a human being, see what has been shown abundantly in the places referred to in 9276(end), 9280. The words 'range of conjugial love from internal to external levels' are used because all aspects of love and all matters of faith, or what amounts to the same thing, all those of good and all those of truth, have a wide range in the heavens; for all who are there are joined together in accord with the degree of similarity between the truths of their faith and the forms of good of their love. A range such as this exists in each separate heaven. But the range in each heaven also extends into heavens that are below, because all the heavens make one. Indeed they extend right down to mankind, in order that mankind also may make one with the heavens. This range is what is meant by the range from higher or more internal levels to lower or more external ones. The higher or more internal levels are called celestial and spiritual, and the lower or more external ones are called natural or worldly.

[3] As regards conjugial love specifically, whose range is the subject here, this love is fundamental to all other kinds of love; it descends from 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 in the heavens. And since 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 exists in and makes the heavens, truly conjugial love constitutes heaven itself with a person. But 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 in the heavens descends from the joining of the Lord to the heavens; for what emanates from the Lord and flows into the heavens is the good of love, and what is received there by the angels is the truth springing from it, thus truth which originates in good or in which there is good. This is why in the Word the Lord is called bridegroom and husband, and heaven together with the Church is called bride and wife.

[4] All this makes clear how holy marriages are in heaven, and how profane adulterous relationships are there. For in themselves marriages are so holy that there is nothing holier, and are so for the added reason that they are the seed-bed of the human race, and the human race is the seed-bed of heaven, since all people who have led an angelic life in the world go there. On the other hand adulterous relationships are so profane that nothing is more profane, because they are destructive of heaven and the Church with a person. For the truth of all this, see what has been stated and shown in 2727-2759 regarding marriages and regarding adulterous situations.

[5] All this once again makes it clear why foul and hellish things are meant by the kinds of 'nakedness' dealt with in 9960 above, and why it was commanded so strictly that when they ministered Aaron and his sons should be wearing the undergarments covering the loins, and that if they did not they would die, for it says,

Make for them linen undergarments to cover their naked flesh; from the loins even to the thighs they shall be. And they shall be on Aaron and on his sons when they go into the tent of meeting or when they approach the altar to minister in the holy place, that they may not bear iniquity and die. It shall be the statute of an age 6 for him and his seed after him.

[6] It should be recognized therefore that by conjugial love all celestial and spiritual love is meant, because truly conjugial love, as has been shown above, is fundamental to all other kinds of love. People therefore in whom that fundamental love is present have all other loves belonging to heaven and the Church present in them; for as has been stated, it descends from 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 in the heavens, the marriage that makes heaven. This also explains why heaven is compared in the Word to a marriage, and is also actually called a marriage. From this too it is evident why precautions were taken to prevent the nakedness of Aaron or his sons from being visible while they ministered; for their nakedness served to mean all loves contrary to heavenly loves, which in general are called self-love and love of the world when they are the ends in view, and are foul and hellish loves. People at the present day have no knowledge that all this is so because they are steeped in these loves and take delight in nothing except that which arises from them. So it is that when spiritual love and celestial love are mentioned they are perplexed, not knowing what they may be, nor consequently what heaven may be; and perhaps they are astonished when they hear and consider that spiritual and celestial love separated from self-love and love of the world holds eternal happiness within it that is indescrib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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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to the Swedenborg Society for the permission to use this translation.